<한겨레> 연재 회고록 ‘길을 찾아서’ 20번째
주인공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101살 현역
화가 김병기 화백이다. 1916년 평양에서 태
어난 김 화백은 일제강점기 도쿄 유학, 해방
과 한국전쟁 전후 남북한 예술계, 65~85년
미국 뉴욕 칩거, 49년 만에 귀국과 100살 신
작 전시회 등등 20세기를 관통하는 역정을
걸어왔다. 그는 타고난 체력과 놀라운 기억
력으로 국내외를 오가며 체득한 미학과 수
한세기를 그리다-101살 현역 김병기 화백의 증언
“내 침대 차지한 이상, 그림 보더니 딱 한마디 했다”
2017-06-22
“주영섭 권유로 도쿄학생예술좌 창립에 참여했다”
2017-06-15
“이중섭의 소·문학수의 말…식민치하 조선 민족의 상징”
2017-06-08
“문화학원의 ‘자유주의’ 옹호했고 니시무라 존경했다”
2017-06-01
“일본 자유미술가협회 총아는 문학수와 이중섭이었다”
2017-05-25
“키큰 김환기는 ‘놋포킨’ 어린 나는 ‘킨보’로 불렸다”
2017-05-18
“아방가르드·후지타 쓰구지…마침내 내길을 찾았다”
2017-05-11
“좌우로 갈린 김사량과 오영진…우리는 모두 유민이었다”
2017-05-03
“문예동인 ‘단층파’는 유항림네 헌책방에서 탄생했다”
2017-04-27
“김동인 자서전에 ‘한량 케이’가 바로 부친 김찬영”
2017-04-19
“평양시절 고달팠던 박수근 서울 와서 보니 훌륭했다”
2017-04-12
“내 약혼식 주례는 조만식 장로…결혼식은 주기철 목사 집도”
2017-04-06
“평양은 신미술운동 요람…삭성회 첫 미술학교 건립도 시도”
2017-03-29
“금기 깬 ‘최초의 누드화’ 김관호도 내 아버지도 불운한 선구자”
2017-03-23
“간송의 국보 ‘고구려 금동불상’은 아버지 소장품이었다’”
2017-03-16
“문예지 표지화에 담긴 김찬영의 화려했던 젊은 날”
2017-03-08
“아버지 졸업작품 ‘님프의 죽음’은 암울한 민족현실 상징”
2017-03-01
“서울 딴살림 아버지…그리움과 미움이 내 예술의 출발”
2017-02-22
“‘반동’ 낙인 찍힌 나를 구해준 은인은 김일성의 외척”
2017-02-17
“난 지주집안 출신이지만 ‘토지는 농민에게’ 지지했다”
2017-02-08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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